본문 바로가기

가득이심리칼럼

[가득이심리칼럼]가족에게서 깊은 상실감을 느끼다

가족에게서 깊은 상실감을 느끼다

 

부유한 가정에서 자랐어요. 아버지가 회사를 몇 개 운영했지요. 저는 장남이지만 어머니는 암으로 일찍 돌아가셨어요. 새엄마에게서 배다른 형제가 두 명, 또 다른 배다른 형제가 한 명 있어요. 아버지는 제가 어릴 때부터 제게 회사운영권을 주기로 약속했고, 저는 그 길만 보고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했어요. 자격증을 취득했고, 아버지가 원하는 S대 대학원 박사과정까지 졸업했어요.

 

그런데 회사운영권을 넘겨받아야 할 때쯤 아버지가 배다른 형제에게 먼저 운영권을 넘겼어요. 아버지가 너는 너무 착하고 융통성이 없어서 회사운영은 어렵겠다는 청천벽력 같은 말씀을 하셨지요. 배다른 형제들은 성실한 제 성향이 미웠다고 해요. 저는 그들에게 어떤 미워하는 마음도 품지 않았어요. 아버지를 이해하려고 했고, 그래서 아버지 뜻을 거역하지 않으려고 애썼어요. 다른 형제들에게 마음을 베풀었고 그들도 웃으면서 저에게 친절하게 대해줬어요. 하지만 막상 회사운영권으로 회의를 할 때 그들 입에서는 저에 대한 비난과 험담이 쏟아져 나왔어요.

제가 그렇게까지 쓰레기였나할 정도로 그들 혀는 가장 날카로운 칼날 같았어요. 아버지가 나를 믿지 않았구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살아갈 희망이 없어요. 좌절감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극복하고 다시 잘 살 수 있을지 두렵고 가족, 사람이 이렇게 무서운 존재인지 생각만 해도 끔찍해요.”

 

가슴이 철렁한다는 마음이 무엇일까? 살다보면 전혀 예기치 못한 일들이 다가올 때가 있다. 믿었던 부모, 가족과 사람들한테서 배신을 당하거나, 나는 꽃을 들고 그 사람을 반기는데 그 사람 가슴에는 날카로운 칼날이 있었던 일들도 한두 번은 경험했을지 모른다. 그 좌절감과 상실감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하인리히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큰 사고는 우연히 또는 어느 순간 갑작스럽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전에 반드시 경미한 사고들이 반복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는 것이다. 큰 사고가 일어나기 전 일정 기간 여러 번 경고성 징후와 전조가 있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큰 재해는 항상 사소한 것들을 방치할 때 일어난다는 얘기다. 사소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를 면밀히 살펴 원인을 파악하고 잘못된 점을 시정하면 큰 사고나 실패를 방지할 수 있지만, 징후가 있는데도 무시하고 방치하면 돌이킬 수 없는 대형사고로 번질 수 있음을 경고한 것이다.

 

자신도 모르게 놓쳤던 무심한 행동이 있지 않았는지 돌이켜본다. 사소한 일로 상대방 감정을 상하게 했을지도 모른다. 더 세심하게 관찰하고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일이 반복될수록 이미 보이지 않는 금이 생겼다는 것을 의심해야 했다.

 

탐욕이 많은 사람은 상대방 약점을 계속 이용한다. 이용당하는 사람은 마냥 솔직하기만 했던 것이 자신이 놓친 점이다. 너무 솔직해서 상대방을 분별하지 못했다는 것이 잘못이라면 잘못이다. 그렇게 자기 약점을 다 보여주었기 때문에 탐욕이 많은 그 사람에게는 자기 것이 아닌데도 그냥 챙기기만 하면 되었다. 믿음을 준 사람을 배신한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 안에는 분명 놓쳤던 작은 문제들이 있었다. 놓쳐버린 대가(代價)일 수도 있다. 그 대가로 분별력을 키워가는 것이다.

 

우리는 사람을 잘 분별한다고 믿지만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인지 탐욕이 많은 사람인지 구별하는 능력은 없다. 다만, 경험에 비추어 자기 잣대로 사람을 빨리 평가하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부모에게서 자주 들었던 말 중 하나가 좋은 친구를 사귀어야 한다. 나쁜 친구는 너한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좋은 친구나 나쁜 친구를 어떤 기준으로 판가름할 수 있을까? 부모의 이런 조언은 분별력을 키워야 한다는 말이었다. 어쩌면 완전한 피해자도 없고 완전한 가해자도 없다. 더 깊이 탐색하지 않아야 할 문제도 있다는 것이다.

자기 아픔만 바라보지 않아야 한다. 내가 아프면 다른 사람도 아프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단지 아픔의 정도 차이가 있을 뿐이다. 좀더 단단한 사람이 안아줄 수 있다면 어떤 좌절 속에서도 다시 일어설 힘을 얻게 된다. 그러나 기괴하게도 좀더 단단한 사람이 오히려 칼을 들이대는 경우가 있다. 자신만큼 평정심을 가진 사람이 없다면서 너 스스로 평정심을 찾으라고 한다. 참 잔혹한 일이다. 그 사람과 관련이 있는 아픔인데도 너무 냉혹하다. 그것은 사랑이 아닌 분노를 자극하는 아주 위험한 경우다. 헤어지더라도 되도록 긍정의 감정을 남기려고 노력해야 한다.

 

지금 계속 좌절하고 있다면 더 깊이 분석할 때가 아니다. 흙탕물은 흔들수록 맑아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혼란으로 더 뿌옇게 된다. 그 물을 그대로 놓고, 맑은 물을 끊임없이 부어주었을 때 흙탕물은 스스로 흘러내려가게 되어 있다. 반복된 좌절에서는 그냥 그 시간의 흐름을 기다려주는 것이 좋다. 자기 잘못이 아니니 견뎌야 하는 것이다. 운전을 하다보면 길을 잘못 들어설 때가 있다. 그럼 유턴하거나 왔던 길을 되돌아가면 된다. 단지 길을 잘못 들어선 것뿐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니 절망하지 말아야 한다. 살면서 한 번이 아니라 몇 번쯤은 맞이해야 하는 과정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