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여는 방법은 문고리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쪽(안)에 있다
중년의 나이를 살다보니 보고 싶지 않는데도 봐야 하고, 듣고 싶지 않는데도 들리는 경우가 있다. 그것이 사람이든, 신문기사든, 소문이든 상관없이 몰아쳐 올 때가 있다. 특히 우리는 사회적인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벗어나지 못하는 것들이 많다. 그나마 지역이 넓은 곳에서 마주할 일이 적지만, 지역이 좁은 곳에서는 한 집만 건너면 다 아는 사람들인 경우가 많다. 특히 시골지역은 말할 것도 없다. 상처가 깊고 치유가 되지 않는 사람들의 특징은 그 대상에 유난히도 강하게 인식이 된다.
‘아침에 보지 말 것을 보았어요. ○○ 공공행사 심사평가 위원회에서 사회를 진행한다는 기사를 봤어요. 그것도 본인이 자랑하듯 밴드에 올렸어요. 끊임없이 자랑질하는 그 사람을 어떻게 해 버리고 싶었어요. 5년 동안 그런 감정이 없었는데 갑자기 분노가 올라왔어요. 죽여 버리고 싶을 정도의 분노였어요. 그 감정을 느끼면서 제가 마치 정신병원에 입원한 사람처럼 망상적이었어요. 그리고 극심한 질투심이 올라와서 접시가 싱크대에 던졌어요. 쨍그랑 소리가 났을 때 정신을 차렸어요. ‘미안하다’는 진심어린 사과 한마디면 되는데 오히려 자신은 잘못한 것이 없다고 했어요.’ 감정의 혼란스러움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감정을 보니 질투심, 원망, 분노, 애증, 그리움이었다. 사실 아무 일도 아닐 수 있는데 자신에게 크게 느껴진 이유는 무엇일까? 그 답은 간단했다. 진심어린 사과를 받지 못해서다. 우리들의 분노는 ‘진심어린 사과’를 받지 못해서 생긴 것이 대부분이다. 그깟 ‘미안하다’란 말이 뭐라고, 자신의 인생 전체를 다 소비할 정도로 감정에 휩 쌓여 살까? 그것은 그 사람에게 그만큼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그 사람을 쉽게 판단하며 말 할 수 없는 것이다. 그 이후로 그 사람은 작은 잘못이여도 다른 사람들에게 진심어린 사과를 하는 습관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는 어떤 책을 봐도, 드라마를 봐도, 영화를 봐도, 뉴스를 봐도 자신이 꽂히는 단어와 글에 더 집중하게 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어쩌면 어떤 이에게는 아무런 일도 아닌 일이 어떤 이에게는 분노를 자극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더 많이 아파서 치유했다면 그 치유를 먼저 하는 사람이 어느 쪽이든 상관없이 상대방을 너그럽게 받아줘야 한다. 치유의 경험은 사람을 품어 안을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 자신 안에는 그 누구도 가름할 수 없는 잠재력이 있다. 그 잠재력 속에서 치유의 능력, 원수라고 할지라도 다시 마주할 수 있는 용기가 있다. 그것은 경험을 통한 자가 치유의 면역력이 생성되었기 때문이다.
30년 만에 연락을 하게 된 사람하고 대화하다가 각자의 방식대로 힘들었던 과거를 문자로 이야기를 하다가 ‘지금까지 공부만 했어. 그래서 여러 가지로 경제적으로 힘드네. 무슨 일을 해야 할지 고민이야’란 말에 상대방이 ‘욕심이 많아서 그래’ 란 말을 상대방에게 던진다. 쌩뚱맞았다. 웬 욕심? 상대방은 버럭 화가 났다. 30년만의 공백을 이해하지 못한 채 몇 분 동안 문자를 가지고 ‘욕심이 많아서 그래’란 말을 어떻게 할 수가 있지? 순간 화가 난 사람이 상대방에게 공격을 한다. ‘힘들다고 하면서 야근 수당이 많이 주닌까 일하는 사람이 더 욕심이 많은거 아닌가’라고 말해 버린 것이다. ‘욕심’이란 말을 상대방에게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욕심’이란 단어를 듣고 화가 난 이유가 무엇일까? ‘욕심’이라고 먼저 말했던 사람은 늘 자기의 몫을 꼭 챙겼고 손해 보는 사람이 아니었던 사람이었다. 그 사람에게 ‘욕심’이란 단어는 자신의 주된 생활관념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욕심’에 화를 버럭 낸 사람은 돈이나 경제적인 부분이 아닌 배움의 대한 ‘욕심’이 들통 난 것에 대한 부정의 의미였다. 어찌 보면 각 개인의 미해결된 문제라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 사소한 말 한마디가 자신에게 성찰의 도구가 될 수 있다.
어떤 관계든 상대방을 존중하는 마음이 관계에서 기본이며 중요한 요소다. 서로 존중의 대상이 된다면 서로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자동시스템처럼 작동하게 된다. 그러나 서로 대화할 때는 공감하는 것 같아 보이지만, 실상 어려움이 닥쳤을 때 상대방의 행동이나 배려의 마음을 보면서 실망감을 느꼈을 때 그 때서야 ‘아. 나와 달랐구나.’ 라고 실망하게 된다. 이 또한 상대방의 대하는 태도나 마음의 자세가 자기식대로 이해하고 받아드렸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것이다. 실망하는 마음은 왜 생기는 것일까? 자신의 생활방식대로 상대방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방식이 잘못 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때 그 이후의 관계는 훨씬 더 성장하게 된다. 그것은 한 쪽만의 노력이 아닌 서로의 노력이 필요하다. 일방통행이 아닌 양방통행이란 것이다. 또한 마음을 여는 방법은 문고리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쪽(안)에 있다. 결국 자신의 결정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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