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낭송이라면 구토가 나요. 시낭송 회장...큰 어머니..‘악마 중의 대왕’
소설 같은 이야기를 시작해 보려한다. 20대 후반의 젊은 청년의 가슴 아픈 사연이다. ‘저는 큰 어머니가 원망스러워요. 저희 어머니를 대하는 모습을 보면 정말 악마가 존재한다면 큰 어머니는 악마 중의 대왕이었을 거예요.’ 라고 말 하면서 이야기를 시작된다.
큰 어머니가 한 달 뒤 시낭송 행사가 있다는 홍보물을 보게 되었어요. 큰 어머니는 시낭송협회에서 나름 회장이라고 들었어요. 그러나 저는 큰 어머니의 시낭송 목소리만 들어서 소름이 돋을 정도로 싫거든요. 제가 큰 어머니를 원망하며 싫어했던 계기가 있었어요. 저는 그동안 큰 어머니가 참 좋은 분이라고 생각했었어요.
어느 날 저희 어머니에게 부엌에서 빈정대는 말과 무시하는 말투로 어머니를 구박하는 모습을 보았어요. 어머니는 한 마디 말도 못하고 야단맞는 어린아이처럼 고개만 떨어뜨리고 있었어요. 처음에는 잘못 들었을 거야, 그건 아닐 거야. 믿고 싶지 않았어요. 나중에 어머니에게 물어보았어요. 그 때부터 어머니께서 펑펑 우시면서 그동안 그런 삶을 살았다고 말했어요. 제가 3살 때 아버지께서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고, 어머니 혼자서 3남매를 키우셨어요. 그 과정 속에서 큰 어머니께서 많은 구박을 하셨다고 해요. 어머니와 둘이 있을 때만 그런다고 했어요. 다른 가족들이 있으면, 챙겨주는 척을 했고, 교양이 넘치는 사람처럼 행동했으며 시낭송 목소리로 가끔 시낭송을 해주기도 했어요. 그러면서 필요할 때 불러서 일도 부려먹고 어쩔 때는 TV 값도 내라고 했어요. 벼룩의 간을 빼먹은 꼴이죠. 큰 어머니 집안은 공무원집안이고 재산이 많아요. 사회적으로는 너무나 가식이 많은 사람이라 누구도 큰 어머니의 악마와 같은 행동을 상상도 못하고 말해도 믿질 않더라구요. 그만큼 자신을 감추는데 능숙한 사람이에요.
저는 고등학교 때 시낭송부에서 시낭송을 할 정도를 시를 좋아했어요. 선생님들께서도 남성의 목소리에서 저렇게 아름다운 목소리가 나오는 것에 대해 신기해했어요. 어머니의 울분된 목소리를 듣는 이후로 제가 가지고 있는 모든 시집은 다 불태웠으며 큰 집에는 되도록 가지 않으려고 했지만, 장남인데다가 아버지가 안 계시기 때문에 전혀 안 가지는 못했어요.
한 달 뒤에 행사가 있다는 홍보물을 본 이후 저의 분노는 그치지 못했어요. 비인격적인 사람이 어떻게 다른 사람들 앞에서 저렇게 두꺼운 가면을 쓸 수 있을까? 폭로하고 싶었어요. 그러나 어머니께서 항상 말씀하셨어요. ‘우리가 그 사람의 잘못을 벌하지 않아도 하늘을 그에 맞는 대가(代價)를 치르게 하시겠지. 모든 것은 우리가 판단하고 벌하는 게 아니야’ 란 말씀을 항상 하셨어요. 참으로 이상한 일이 있었어요. 한 달 뒤 행사가 있는 날이었어요. 기억에서 지우고 싶었는데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어요. 하루 종일 왠지 모를 불안과 무슨 일을 해도 안절부절 못한 저를 발견하게 되었어요. 급기야 달리는 고속도로에서 큰 사고를 내고 말았어요. 그 사고가 난 후 10년의 세월이 흘렀어요. 지금은 장애등급을 받은 채로 살고 있어요. 아직도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고 꿈에서 저를 괴롭히고 있어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마음이 무엇 때문일까? 나름 의지하고 믿었던 큰 어머니의 배신, 어머니의 삶 무게와 고통, 교통사고로 장애인이 되는 과정까지 숨가뿐 삶 속에서 무엇을 얻으면서 살아왔을까? 얼마나 애쓰며 살았을까? 쌓인 분노는 어떡할 것인가? 자신의 삶을 살아내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가슴 깊이 멍울졌다.
먼저, 큰 어머니는 ‘악마 중의 대왕’, 두 번째 자신이 좋아했던 시집을 불 태웠다는 것과 마지막으로 한 달 뒤 행사를 기억하고 있었다는 점. 우리의 무의식은 현실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계속 들어나게 되어 있다. 마음속에 해결되지 않은 무언가가 남는다면 그것은 언젠가 문제로 발아하는 씨앗의 역할을 하게 되어 있다.
‘악마 중의 대왕’으로 표현하는 것은 우리가 어떤 사람이 싫다고 말하면서 그 사람의 모든 것이 싫어지기 시작한다. 이런 점에서 우리의 심리구조는 단순하면서도 독특하다. 싫어하는 마음이 마음속으로 들어와 자리 잡을 때는 악마의 형태로 변형시킨다. ‘싫다 싫다’를 여러 번 반복해 보라. 어떤 느낌이 드는지를 느껴보면 알게 된다. ‘이유 없이 짜증난다’ 라고 말한다. 반대로 ‘좋아 좋아’를 여러 번 반복해 보라. 그냥 기분이 좋아지면서 이유 없이 미소가 지어지는 느낌을 받게 된다. 생각 속에서 레몬을 떠오르면 자동반응으로 침이 고인다. 이런 원리와 같다. 맛없는 것을 먹으면서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상상해서 섭취하게 되면 그 맛이 난다. 그만큼 생각이 감정을 관장하고 있다. 싫었던 존재가 왜 나의 큰 어머니인지 원망스러웠을 것이다. 그 원망이 결국 악마의 탈을 쓴 사람으로 변형시켰던 것이다. 그런 사람이 시낭송을 한다라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시를 좋아하는 자신과 동일시했다. 이런 동일시는 불을 태워 흔적으로 남기지 않을 정도로 분노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한 달 뒤, 그 날 교통사고가 난 것은 그 청년의 무의식 속에 있던 이 모든 것들의 부정적 감정이 큰 어머니가 행사하는 날 일어난 것이다. 결국 부정적인 생각은 부정적인 행동의 결과로 나타나는 것과 같다. 마음속의 분노가 교통사고와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음과도 같다. 누구한테로 큰 어머니에 대한 이중성을 폭로하지 못하고 억압했던 청년의 마음이 결국 자신에게 쏟아졌던 것이다. 중요한 사실은 그런 과정 속에서 어떤 것이 진실인지 알아내려고 해도 자신이 믿는 것만 진실이라고 믿기에 우리는 모든 진실을 다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가득이심리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생이란 ‘0’이 되지 않으려면 ‘곱씹기’를 잘해야 한다./ ‘상처를 받은 것을 제발 기억해라. (0) | 2020.03.08 |
---|---|
거저 주는 인생은 없다 (0) | 2020.03.07 |
어떻게 그들의 마음을 안아줘야 할까? (0) | 2020.03.03 |
암은 수술하는 게 아니다. 손잡고 다니는 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이라고…… (0) | 2020.03.02 |
‘믿어 의심하라’, 의심하고 또 의심하라. (0) | 2020.03.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