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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득이심리칼럼

거저 주는 인생은 없다

거저 주는 인생은 없다

선생님, 요즘 제 자신을 제가 너무 많이 괴롭혀서 많이 힘드네요. 저는 모범생처럼 자라왔어요. 무탈하게 컸어요. 부유한 가정은 아니었어요. 먹고 살기 바쁘다고 했지만 어머니는 주부였고 언니와 저는 방치된 채로 자라왔어요. 그것이 무탈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성인이 되어 생각해 보니 방임에 가까웠구나 라는 것도 알았어요. 알아서 결정하고 혼자서 삶을 계획하고 사회생활도 했었으니까요. 괴로운 것은 제가 저를 생각해보니 양심적, 도덕성이 남들보다 과하다는 말을 자주 들으면서 더 잘 알게 되었는데, 그 부분이 지금 저를 많이 힘들게 해요. 조금만 벗어나도 스스로 정죄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것인데 불구하구요. 그런 제가 의학공부를 시작하였고, 현장에서 일을 하고 있어요. 그렇다보면 저를 더 힘들게 하는 자신을 발견했어요. 타인을 수용하기 보다는 제 자신을 더 후려파고 있음을 지각하면서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어요. 이런 행동이 어른답지 못하다는 것도 너무 창피하고 수치스러움까지 느끼게 해요

 

안타까운 마음이 먹먹함으로 다가왔다. 과연 어떤 말을 전할 수 있을까? 어른답지 못해서가 아니라, 책임을 져야 하는 역할에 대한 당위성 때문에 자신이 너무 지쳐 보인다. 지친 자신을 가족에게 위로 받고 싶었으나 자신이 원하는 위로를 받기 보다는 오히려 부정적이냐, 비관적이냐 란 말을 들으면서 더 상황은 극도로 나빠졌던 것 같다. 자신이 자신을 위로해 주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나 늘 타인을 먼저 챙기고 배려한 사람에게는 스스로 위로하고 토닥여주라는 말이 때로는 가혹하게 들렸을 것이다.

 

방임이 된 채 살아온 어린 시절이 스스로는 건강한 가족의 형태라고 믿고 살아왔기 때문에 스스로도 많이 혼란을 겪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세상에 공짜가 없다라는 말을 새기게 된다. 그 어떤 것도 노력 없이 얻어지는 것이 없다. 당장은 혜택을 받은 것처럼 보이나 언젠가는 그만큼의 대가를 다른 형태로 치르게 되어 있다. 그 혼란 가운데 지각만 했을 때 스스로 위로의 시간을 갖거나 자신의 강점을 받아들이는 훈련이 많이 부족했음을 인정해야 한다. 지금까지 그렇게 하지 못한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그동안 다른 곳으로 에너지를 다 빼앗겼기 때문이다. 살아내기 위해서 그동안 참 열심히 살아온 당신에게 너무 형편없다고 단정 지어서 생각하지 않기를 권고한다. 삶에 지치다 보면, 자신이 못돼 먹어서도 아니고 어린아이 같아서도 아니라 써야 할 에너지가 바닥이라는 것을 먼저 기억해 줬으면 한다.

 

가장 가까운 가족이 먼저 알아보고 위로해주고, 자신의 존재 가치를 인정해 주면 좋겠지만 그들도 각 개체일 뿐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 찾고 위로하고 인정해 주지 않으면 지금처럼 써야 할 에너지가 하나도 없을 때 허망감을 가지고 된다. 이 때 그동안 공부했던 많은 것들이 자신을 더 힘들게 할 수 도 있다. 스스로 상담 공부한다고 해서 자신을 조금 드려다 볼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타인을 수용하는 능력이 커지는 것이 아니다. 타인을 수용하기 이전에 자신을 옥죄이지 않았으면 한다. 그 부분에서 탈피되어야 자신의 정체성을 찾게 되고 타인을 수용하게 된다. 이것은 에너지를 잘 분배하며 사용하지 않는 결과이다.

 

자신의 삶을 재구성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내재된 힘으로 재구성하기에 충분한데도 불구하고 현재 처한 상황이 너무 힘들기 때문에 삶의 재구성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한 것이 자신을 더 가학하고 있지는 않는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좋은 자원들이 너무도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부정하게 되면 물 흐르듯이 흘러가지 않는 요인을 찾아봐야 한다. 자연스럽게 흘러가지 못하는 원인을 탐색해 보고, 자신을 더 초라하게, 위축시키거나 쓸모없게 느껴지도록 하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가 균형 잡힌 삶을 살지 않으면 매 순간 생각 속에서 시달리게 되어있다. 불안한 생각, 두려운 생각, 공포감을 느끼는 생각들로 악몽을 꾸게 된다. 천사와 악마의 싸움이 환청, 환각처럼 보여 지기도 합니다. 사탄은 존재한다.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가? 무서운 이야기를 하는 사람을 만나고 집에 들어오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시달리는 경험을 한다. 그것이 사탄이 있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 특히 자신의 의지가 약할 때 더 잘 이입된다.

 

자신을 괴롭히는 생각은 되도록 하지 않아야 한다. 그런 생각이 들어올 때는 자신의 강점을 생각하시고 자신에게 도움을 받아서 새로운 희망을 찾아가는 사람들을 떠올려 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우리는 자신의 욕구들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지향적인 시도를 하게 된다. 그러나 그것이 상당히 주관적이다 보니 지각된 현실 속에서 자신을 유지, 향상시키기 위해서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즉 자신의 사적인 경험세계를 바탕으로 객관적으로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나름대로 지각하고 느끼고 생각하고 주관적 현실에 반응한다는 의미다. 그런 과정에서 사적인 경험으로 최대한 자유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진행하게 되지만 반대로 자신의 자유가 속박되면 자신뿐만 아니라 가정, 사회적으로까지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주관적 경험은 상당히 중요하다. 자신을 회복시키기 위해서는 좋은 경험을 다시 차곡차곡 쌓아가는 노력도 필요하다. 자신이 어떤 특정한 행위나 결과물을 나타내지 않아도 사랑받고 존중받기에 충분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새로운 상황에서 무조건적인 긍정적 존경의 경험이 길러져야 한다. 많이 경험하면 할수록 길러지는 것은 쉬워진다. 자신 안의 잠재력을 믿어야 한다. 또한 비난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 비난이 자신이 되었든, 가족이든, 타인이든, 사회든 모든 것에서 비난은 잠재력을 상실시킨다. 우리 안에는 파괴적이고 공격적인 성향이 있다. 부당한 상황에서 파괴적이고 공격적인 성향은 정당하게 노출이 될 수 있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스스로 자신의 존재 가치를 인정하시고, 자기 안의 당당함은 없는 것이 아니라 단지 지금 현재 에너지가 고갈됨을 알아차리고 다시 재구성하면 된다.

 

일반적이라고 말하고 일반적인 상황 등을 받아들이기 보다는 자기만의 색을 살아보니 다른 사람의 따가운 시선을 피하는 것이 힘겹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가끔 일반적이지 않는 것에 대해 가끔 괴로워했고 다른 사람의 눈치를 봐야만 했고, 그들의 조언 아닌 충고에 힘들었다. 모든 사람들이 왜 일반적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에 대해서는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다만, 그래야 그들에게 이해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하는 생각은 들었다. 그래서 일반적이지 못하는 나의 생각에서 오해의 소지를 만들었다는 점이다. 자신의 입장에서는 전혀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내 자신이 평가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은 풀리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의 눈치를 살피지 보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가야 하는 이유는 자신 안의 떳떳함과 정직함, 삶의 의지와 열정이 높이 사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