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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득이심리칼럼

어떻게 그들의 마음을 안아주어야 할까?

어떻게 그들의 마음을 안아주어야 할까?

수많은 종류의 전화 상담을 하다보면, 답답한 마음이 그지없을 때가 있다. 20대이든, 60대이든 남녀노소 상관없이 자신의 고민 문제가 이성간의 문제든, 고시생이든, 성욕에 대한 불만족이든, 재혼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 부모와의 인연을 끊을지, 재산상속을 주고 싶지 않는데 방법을 알려달라는 등에 대한 답을 달라고 한다. 반대로 질문을 한다. ‘답이 어디 있습니까? 그 답을 왜 제게 물으십니까? 제가 듣다보니 이미 답을 가지고 제게 말씀하고 계시지 않으신가요?’ 라고 물으면 오히려 욕을 하거나 호통을 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화상담은 계속 이어져야 하는 이유는 백 명 중 한 명이라도 적재적소의 도움을 받아서 삶의 희망을 갖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미 답을 가지고 있으면서 상담사에게 질문을 한다. 상담사의 답이 뭐 그리 중요할 것인가? 상담사의 답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과 결정이 맞다라는 것을 증명 받고 싶을 뿐이다. 세상에 맞다라는 게 어디 있을까? 자기 입장에서 맞다라고 주장을 내세울 뿐이지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배려하지 않는 일방적인 결론은 맞다 틀린 문제의 것이 아니다. 굳이 맞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자신의 탐욕적인 마음을 정확히 살펴보는 것이 맞다라고 말할 것이다.

 

 

인간에게 존재하는 불안과 불신이 도움을 주려고 내민 손을 잡으면서 의심의 눈초리는 수십 번 되묻고 재확인한다. 혼자서 하기는 버겁고 다른 사람을 믿고 가기에는 시답지 않지만 그래서 조금이라도 이득이 있다면 함께 가는 사람들의 양상이다. 불신이 높은 사람 또는 다른 사람에게 배신을 많이 당해본 사람은 급기야 핸드폰 음성녹음까지 몰래 한다. 행여 한마디 말이 거슬리기를 기다리는 사람들 같다. ‘. 힘드시겠어요. 지금은 좀 괜찮으세요?’ 라고 말하면 지금 괜찮은지 왜 묻느냐, 지금 안 괜찮으면 어떻게 해 주려고 그러느냐고 날카롭게 꾸짖는다. 한 마디 말이라도 거슬리는 말이라고 생각하면 여지없이 쏘아 붙친다. 전혀 거슬리는 말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는 다른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언어가 짜증이 난다고 말한다. 그리고는 녹음했다면서 고소하겠다란 말까지 덧붙친다. 고소당하는 것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선의의 베품에 대해서 어떻게 손을 내밀 수 있을까?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피해망상적인 양상을 보이게 하는 것일까? 그들은 어디가 아픈 것일까? 어떻게 그들의 마음을 안아줘야 할까? 이미 많은 상처들이 몸에 베어낸 흔적들이다.

 

57살에 재혼을 한 부인의 하소연이다. ‘남편은 나보다 6살이 위예요. 우리는 12전에 재혼을 했어요. 남편은 인간적인 면이 하나도 없을 만큼 셈에 능하고 냉철해요. 그리고 사람을 믿지 않고, 모든 것을 직접 당신 손으로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에요. 단 돈 천원도 제게 주지 않았어요. 재혼할 당시에 제가 돈이 많은 줄 알고 재혼했다가 돈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 늘 무시하고 부부관계도 하지 않고, 남편의 외도는 끊임없이 지속되고 있는 상태예요. 남편은 공무원으로 정년퇴직을 하였고, 지금은 연금을 받고 있어요. 공무원이라면 치가 떨리도록 싫어요. 남편이 현재 75세이니 죽을 것을 대비해서 재산상속을 생각하고 있어요. 5억의 재산을 자신이 죽으면 배우자에게 상속되는 것이 너무 싫어서 이혼준비 중이예요. 그런 남편을 바라보면서 하루하루 불안과 두려움으로 살고 있어요. 사실 이혼을 해도 좋은데, 제가 마치 재산을 바라보고 재혼한 사람처럼 늘 윽박지르고 쌍욕을 하고 파렴치한 사람 취급당하는 것이 너무 억울해요. ‘재산에는 욕심이 없다라고 말을 해도 믿질 않아요. 위자료도 알아보니 재혼한 다음 재산증식의 기여도에 따라 위자료가 지급이 되는데, 저는 가정주부로 12년을 함께 살았고, 재혼한 뒤로 재산증식은 없었어요. 그래서 위자료가 아주 많아야 이천만원이래요. 보통은 천만원정도래요. 너무 치사하고 진심을 몰라주는 것 같아 먼저 이혼하자고 할까 망서려지네요

 

부부라는 호칭을 가지고 있으면 무엇이 매 순간 의심하며 긴장된 삶을 살게 했을까? 독일의 시인 괴테는 옷의 첫 단추를 잘못 잠그면 모두 잘못 잠그게 된다라고 시작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시작이 절반이다라는 속담이 있을 만큼 시작은 중요하다. 그래서 어떤 것을 시작하기 전에는 사전조사도 하고 다른 사람들의 의견도 들어보고 그것을 선택한 사람들의 조언도 들어가면서 최종결과를 하게 된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묻지 않고 자기의 고집과 자기생각이 옳다라고 믿거나 다른 사람을 신뢰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이것은 실패율을 낮추기 위한 선택이며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고집대로 하는 사람을 너 고집 세다라고 말할 필요도 없다. 그들의 선택을 존중할 뿐이다. 그러나 그들의 선택임에도 불구하고 어쩔 도리가 없이 힘든 진퇴양난(進退兩難)이거나 누구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사면초가(四面楚歌)가 될 경우에는 책임을 지려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거나 자책하게 된다. 또 다른 경우에는 시작이 잘못되었더라도 끝이 좋을 수도 있다. 여러 가지 관점에서 내게 주어진 모든 문제를 고려해봐야 한다. 스스로 불안을 알면서도 그 불안이 터질까봐 안절부절 못하는 것은 자신이 자신을 들볶는 셈이다. 순수하지 않는 것, 자명(自明)하지 않는 것은 보호받지 못한다. 자연의 법칙은 자명하지 않는 것에 손을 들어주지 않는다. 스스로 이치에서 어긋난다고 판단이 되거든 과감한 결단력이 필요하다.